개인적으로 사람들의 삶,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에세이, 자서전 분야의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수많은 책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찾기가 쉽지 않다. 자서전이야 저명한 인물의 책을 읽으면 되지만 에세이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매번 교보문고 에세이코너를 서성이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어디선가 '기획자의 독서'라는 책을 추천하는 걸 봤다. 내용이나 한번 알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점에 들러 읽어봤는데 초반 부분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서 그 자리에서 앞부분을 거의 다 읽었고 바로 구매 후 집에서 남은 부분을 다 읽었다.
난 기획자가 아닌데....
기획자의 독서라는 제목을 보고 "난 기획자가 아닌데? 이 책 나에겐 맞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아니었다. 책을 읽어본 내 느낌대로 제목을 다시 지어본다면 '기획하는 사람의 독서이야기'라는 무게감을 조금 덜어낸 듯한 제목이 어울린다. 독서가 메인 내용이고 기획은 서브다. 그렇다 보니 굳이 기획자가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고 기획 자체도 가볍게 접근해 우리 모두가 기획자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유를 찾다 보면 조금 더 선명해질지 몰라
"사람들이 책을 고르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은 비슷하고 단순하다. '재밌다', '내용이 좋다', '어렵다', '별로다'라는 식으로 대략적인 느낌만 남아있게 된다.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는 어느샌가 잊혀진것이다."
나에게 영향을 준것들의 이유를 한 번이라도 풀어보면 흐릿했던 생각들이 점점 선명해진다. 꽃도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도 그 이유를 찾아주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것일지 모릅니다.
이 부분이 가장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부분이다. 책을 읽고 감상평이 단조로운 건 물론이고 일상에서 이 문제가 더 크게 두드려진다. 처음 맞이하는 상황이 아닌 익숙한 환경일수록 내 행동, 생각들의 이유가 사라지고 무의식적인 행동만 남게 된다. 어느 순간 내 행동들을 곱씹어보면 "내가 왜 이랬지?" 하는 상황이 많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다가 욕실화를 신고 샤워를 하는지 맨발로 샤워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나는 욕실화를 신고 샤워를 했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맨발로 샤워한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나한테 왜 신고 샤워하냐고 물어봤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아무런 위화감 없이 "그냥 그게 편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분명히 존재했다. 난 발바닥에 차가운 게 닿는 게 싫어서 집에 있을 때도 여름을 제외하고는 항상 실내용 양말을 신었다. 그렇다 보니 사계절 내내 차가운 바닥인 화장실은 욕실화를 무조건 신었고 혹시라도 신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발이 최대한 바닥에 안 닿도록 오므리고 다녔었다.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남이 물어봤을 땐 "어? 그냥 이게 편해서" 나도 모르게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아니면 바닥이 더러우니까 라는 다른 이유를 댔을 수도 있다. 나 자신도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몰랐는데 어떤 이유라도 대야 하니까 아무 말이나 하는 거다.
나에게 이런 식으로 잊힌 이유들이 얼마나 많을까? 자소서를 작성할 때 나오는 취미, 특기, 잘하는 거, 싫어하는 거, 좋아하는 거 이런 항목들을 작성할 때 항상 머리를 싸매고 괜찮은 거 없을까 끙끙거렸는데 이면에 있는 숨겨진 이유를 찾다 보면 나 자신이 또렷해지고 주관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낯설게 보기
저자는 마케터다 보니 크리에이티브에 관련된 강연, 콘텐츠를 자주 찾아보는데 매번 강조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낯설게 보기'다. 일상 속에서 특별함과 새로움을 찾는 것은 모두 낯설게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지만 저자의 방법을 참고로 말하자면 작은 것부터 변주를 주는 것이다.
평소에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기, 평소에 읽지 않았던 분야의 책 읽어보기, 낯선 동네 가보기, 다른 사람의 플레이 리스트 들어보기 등등
한 일화가 나온다. 운전이 무서워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사람이 시간이 흘러 전기 자전거를 타게 되었고 이 정도면 오토바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오토바이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작은 거부터 조금씩 바꿔나가면 어느덧 초월적인 변화를 가져다준다.
난 마케터는 아니지만 남들과 다른 생각, 아이디어, 창의성을 막연하게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런 성향과 더불어 조금은 특이한 성격이 겹쳐서 그런지 기획자의 독서를 읽기 전에도 일부러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닌 길로도 다녀보고 스타벅스 같은데 커피를 마시러 가면 항상 특이한 메뉴들을 도전해 왔다. 아직까지 이런 행위들이 어떤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나름 새로운 경험들을 제공해 줬다. 우리 집 바로 옆 골목에 있는 과일케이크 맛집을 알 수 있게 됐고 침착맨 유튜브와 백종원 유튜브에서만 봤던 뱅쇼의 맛을 알 수 있게 됐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모이다 보면 언젠가 큰 결실을 맺지 않을까?
낯설게 보기 부분을 읽고 생각난 기행이 있다. 아무 버스 정류장이나 가서 무작정 처음 오는 버스를 타고 5 정거장 정도 이동후 내리는 거다. 이걸 2번에서 3번 정도 반복하고 도착한 곳을 구경해 보는 거다. 그리고 또 가보지 않은 곳을 선정해서 디지털 기기 길 찾기를 이용하지 않고 찾아가 보는 거다.
이런 행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재밌을 거 같다 ㅋㅋㅋ 언제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게 된다면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해 봐야겠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저자는 oo트렌드라는 책을 싫어하지만 싫다고 외면하는 것과 직접 체험해 보고 좋고 싫음을 가리는 것은 천지차이이기 때문에 매년 읽어본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걸 보고 "음.... 그래 맞지 맞지 나도 남들 얘기만 듣고 싫어하는 게 종종 있으니까 다음에는 신경 써봐야겠다."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책의 초반부에 나온'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에 대한 얘기가 떠올랐다.
그 내용은 책제목이 가벼워지는 흐름이 있었고 대표적으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들이 큰 영향을 주었다며 언급했다. 그러면서 책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알려줬는데 내용이 예상외였다.
제목만 보고는 "떡볶이 진짜 참 좋아하네 보나 마나 힐링 에세이겠구먼"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실제 내용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자가 정신과 의사와 나눈 이야기를 엮은 작품이었다. 생각보단 괜찮은 책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교보문고에서 아무튼 oo 시리즈 에세이들이 모여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 그걸 보고 마구잡이로 유행을 따르는 에세이 느낌이 강하게 나서 거부감이 들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 성급한 생각이었던 거 같다. 난 책을 고를 때 대부분 표지와 제목만 보고 마음에 드는 걸 고르는데 그중에서 내용도 맘에 드는 책은 얼마 없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표지와 제목이 맘에 안 들지만 내용은 마음에 드는 책도 많이 있을 거다.
지레짐작하지 말고 내가 직접 내용을 확인해 보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기획자의 독서를 읽으며
책에서 말하는 핀트와는 조금 어긋난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지만 아무래도 많은 생각을 하고 받아들이고 가공하며 내뱉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쓴 책이다 보니 내 생각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생각이란 걸 하고 있는지, 나만의 생각이 있는지, 난장판인 생각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어느 정도는 알게 됐다.
'읽는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브리 대빵의 생각? - 미야자키 하야오 책으로 가는 문 (2) | 2024.11.26 |
---|---|
창의성은 우연이 아니라 과정이다 - 60분 만에 읽었지만 평생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아이디어 생산법 (0) | 2024.03.20 |